두가지 종류의 기쁨
두 종류의 참기쁨
본문: 로마서 3:19-31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기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남들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둘째는 ‘남들과 같다’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다름에서 온 기쁨
첫 번째 기쁨은 남보다 더 잘났다는 데서 오는 기쁨, 즉 경쟁에서 이기는 기쁨입니다. 공부해서 항상 1등을 하거나,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갔을 때, 혹은 사업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큰 기쁨을 느낍니다. 안세영 선수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고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러한 기쁨이 바로 남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은 ‘남들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기쁨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늘 경쟁심을 품고 살아가며 고단한 인생을 삽니다. 거기서 오는 열등감과 시기심 때문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고통을 겪습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조차 남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겠다는 동기로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대학 교수님도 신앙생활을 매우 열심히 하셨습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기도와 전도에도 열심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순회 전도사님이 간증 집회 후 그 교수님에게 “집사님은 천국에 가면 아주 큰 2층 집에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은 더욱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는 상이 따로 없습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 자체가 최고의 상이며, 거기에는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습니다. 구원은 그 자체로 충만한 기쁨이기에 무한대의 수에 몇 천, 몇 억을 더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같음에서 오는 기쁨
우리에게는 남들과 다르다는 기쁨 못지않게, ‘모든 사람과 같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 매우 큽니다. 한 가족이라는 기쁨, 고향 사람을 만난 반가움, 한 민족이라는 친밀함,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선한 역사를 위해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제 미국인 친구 데이비드(David)는 흑인의 자유를 위해 마틴 루터 킹이 이끄는 민권 운동 시위대에 참여하여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함께 행진했을 때 느꼈던 기쁨을 가끔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남과 같은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때 '같음'에서 오는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성경-죄인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2-23)
제가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했을 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이 말씀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믿고 난 후 나의 죄인 됨을 깨달았고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 “왜 화를 잘 내니?”, “왜 믿음이 없니?”라는 비난 속에서 깊은 죄의식과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성경을 통해 나 혼자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며 나와 같은 한계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기쁨이 임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허물을 보고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맙시다(롬 14:4). 예수님도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 하기 전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구원
우리 모두는 한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가 같은 사람입니다. 22절에서 보면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24, 25절을 읽어 봅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26).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27). 29-30절을 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 할례자나 무할례자 다 똑 같이 한분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은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똑 같은 믿음으로 율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한 하나님을 섬기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하나 됨은 죽음으로도바꿀 수 없는 영원한 한백성이 된 것입니다.
죽음
또한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만약 나만 죽는다면 억울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을 거쳐 하늘나라에서 함께 영원히 살게 되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마저도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 또한 장차 하늘나라에 가면 수천 년 전 믿음의 선배들인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을 만나 교제하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기 전, 이 땅에서 100개국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들과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는 구원 받은 가족(같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1-3)
여기서 ‘보배로운 기름’은 아론의 제사장 위임식 때 부은 거룩한 관유로, 성도가 함께할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거룩하고 풍성한 은혜가 차고 넘쳐 흘러감을 뜻합니다. ‘헐몬의 이슬’은 이스라엘 북쪽 높고 눈 덮인 헐몬산의 풍부한 이슬처럼, 메마른 삶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 생명력으로 소생하고 회복됨을 비유합니다.
간증1
저는 온마음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사심 없이 인간적인 관계를 넘어 30년 이상 믿음을 공유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빈손으로 땅을 사고 예배당을 건축하며 함께 희생했던 기억은 ‘같음’에서 오는 잊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저의 일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젊은 대학생들과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그리고 온마음교회를 개척하며 성도들과 복음 역사를 이루었을 때였습니다. 이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 학생들과 함께 한국말로 성경을 공부하고 그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기쁨 역시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민족 교회 성도들도 이 기쁨 때문에 천안, 김포, 죽전 등 먼 곳에서 서울까지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학생들을 먹이고 함께 예배합니다.
궈면 가족 성도를 사랑
한때 저는 유학생 사역으로 힘든 저를 가족들이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기쁩니다. 남과 다름에서 오는 기쁨만을 추구하며 경쟁속에 살지 말고,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부와 자녀, 손주, 그리고 교회라는 영적 가족을 깊이 사랑하며 ‘같음’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선교의 중요성
더 나아가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한 가족으로 삼기 위해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통해 믿게 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요 17:20),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요 10:16). 리빙스턴 선교사는 이 말씀을 듣고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요즘 한국 대학생보다 100개국 32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전도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환하게 열어놓으셨습니다. 바울은 아무 대가 없이 자비량으로 양들을 섬기는 그 삶 자체가 면류관이요 상이라고 했습니다.
경쟁과 차별에서 오는 고단한 기쁨이 아니라, 십자가 은혜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됨을 통해 누리는 영원하고 한량없는 참기쁨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가지 종류의 기쁨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