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으로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본문] 누가복음 16:19-31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 있다면 그 보물을 누구에게 주고 싶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가족에게 먼저 주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고통이 닥아 온다면 누구에게 그 고통을 피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내 가족만큼은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천국을 믿는다면 그 천국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을까요? 우리가 지옥을 믿는다면 누가 그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할까요? 이미 답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진짜로 믿는다면 무엇보다 먼저 가족부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지옥을 믿는다면 이곳으로 우리가족이 오지 않기를 긴절히 바랄 것입니다.
누가복음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고통 받는 곳이 어디 입니까? 23에서 보면 음부 곧 지옥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먼저 가족을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 보는데 있어서 세가지 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부자의 인생, 둘째 거지 나사로의 인생, 셋째, 가족 전도의 긴급성
Ⅰ부자의 인생
그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아 떵떵거리고 살았습니다. 이 부자는 돈이 아주 많은 부자였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당시로는 최고의 옷이었습니다. 왕들이 입던 옷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왕들은 애급에서 생산한 린낸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며 흥청망청 먹어대며 살았습니다. 다섯형제들이 있는 것을 보면, 또한 그 형제들의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가족끼리 모이는 잔치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대문 밖에서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 개나 짐승들이 먹는 것으로조차 배를 채울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있었으나 부자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남에 대한 동정심이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외국인을 무시한 한국 사람들의 죄 아마 그가 부자가 되기까지 인정사정없이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가난한 자의 머리에 티끌을 탐내면서까지 돈을 긁어 모았을 것입니다. 오직 자기에게 유익이 되었으면 그만 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주신 돈을 청지기로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벌었으니 자기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자기의 대문 앞에 병들고 굶주려 있는 거지 나사로를 위하여 쓰라고 맡겨 놓은 것까지도 자기의 것이라고 착복하고 산 것입니다.하나님을 위하여 한푼의 돈도 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산 부자의 저세상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그의 내세의 삶을 그림처럼 자세하게 그려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호화로운 삶도 끝이 났습니다. 죽음이 온 것입니다. 부유한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었으니 얼마나 호화로운 장례를 치렀겠습니까? 상류층의 조문객들 이 줄을 이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 부자가 간 곳은 어디입니까? 23,24절을 읽어보십시다. 살았을 때 부유했던 그는 이제 외로운 빈 털털이가 되고 말았습니다.지옥의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물 한 방울 찍어다가 그 혀를 서늘하게 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그가 가지고 있었던 재물이 이제는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후회가 되어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통해서 물 한 방울만을 찍어 그의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 보지만 그에게는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그는 불꽃 가운데서 죽게 되어서야 살았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준비하지 않고 사는 것을 후회 해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에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옥이란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이제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 보지만 은혜 받을 기회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가 처해 있는 지옥과 나사로가 머물러 있는 천국과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서로 왕래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을 그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불신자들 가운데 농담으로 나는 지옥에 가도 상관없다고 말한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을 몰라서 그러지 지옥은 갈 곳이 못됩니다. 거기에는 유황불이 활활 타오른 곳이라고 했습니다(계시록 21:8). 예수님은 눈이 없고 손이 없는 것보다 온몸이 지옥에 빠지는 것이 더 무서운 곳이라고 했습니다(마 5:29-30)
Ⅱ. 나사로의 인생
둘째로 우리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말합니다."살았을 때에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살았을 때에 고난을 받은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살면서 고난을 받았느냐 가 중요합니다. 그는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앓으면서 또한 거지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살 집도 없어서 부잣집 대문 간에 누어서 개나 짐승이 먹는 음식 찌꺼기를 먹고살았습니다. 그것도 먹으려고 하면 개가 그 상처를 건드려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와같이 비참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는 아브라함의 말은 나사로가 고난의 대가로 위로를 받았다는 말로 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이 의미를 생각해 보면 나사로에게서 위대한 점을 배우게 됩니다. 나사로는 이와 같은 극한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부자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한마디 원망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날마다 호화롭게 그 앞에서 연락을 즐기는 무리들을 바라 볼 때 거지 때들을 데려다가 데모라도 일으킬 법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원망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부자를 해하고자 하는 어떤 음흉한 계획도 꾸미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다가도 이와 같이 불공평한 세상을 방관하고 있는 하나님은 믿을 필요가 없다고 믿음도 포기하고 말았을 법합니다.그러나 그가 죽은 후 아브라함의 품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와 같은 극한 상황 가운데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병들고 가난했지만 그 불행한 인생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아니하고 욥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았을 때에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고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살았을 때의 그의 삶이 죽은 후의 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나사로와 같이 거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병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것이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와 같은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결코 전부가 아닙니다. 현재의 우리의 고통과 불행이 영원한 불행이 아닙니다. 현재의 우리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의 실패나 고난은 하늘나라의 보화를 준비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현재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게 됩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피상적으로 보일 뿐 그 내면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의 내면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살게 될 때 우리는 사람 중에 어떻게 보이는 가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사로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살게 됩니다.
Ⅲ.가족 전도의 긴급성.
이상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인생의 삶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의 삶만을 위하여 온 정력을 다 쏟고 살았습니다. 내세가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내세를 위해서 전혀 준비 없이 살았습니다. 그 결과 전혀 예상치 않았던 죽음을 만나게 되었고 죽은 후에야 지옥의 엄연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야 후회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가족만큼은 여기에 오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이런 요구를 합니다.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말씀에서 우리는 가족을 전도해야 할 필요성을 너무나 절실히 깨댣습니다. 자기가 지옥에 가보니까 자기 가족만큼은 절대로 와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만 믿고 가족은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나온 부자는 지옥에 가서야 지옥의 실제를 알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바로 지금 부자가 경험 했던 지옥의 실제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그런 지옥에 가도록 가만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가족 전도를 할 수 있을까요?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가족을 전도하는 유일한 길은 어떤 특별한 기적, 죽은자가 살아나는 기적보다 모세와 선지자의 글, 곧 성경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언변이 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기에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안에 믿음을 일으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현재에 일어나지 않지만 장차 우리의 바라는 것들이 실상, 실재의 사실로 알게 됩니다.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리고 했습니다. 여기서 증거란 사람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드러 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궁부할 때 놀랍게도 이와 같은 믿음을 일으킨 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전도하기 위하여 1년에 한번씩 우리 7남매 부부가 모여 수양회를 해왔습니다, 2밥 3일 정도 장소를 빌려 수양회를 하면 열심히 말씀을 준비하여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우리 형제들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큰 누나와 큰 형님이 돌아 가셨는데 아주 잘 믿고 돌아 가셨습니다. 정말 성경을 가르칠 때 믿음을 일으키고 믿음을 통해서 장차 이루어 질 일이 말씀의 약속 대로 실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보지 못한 확실한 증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실재라는 것을 믿게 합니다.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성경을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믿게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믿지 않는 가족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온마음을 쏟아 기도하고 사랑과 관심을 보이면서 성경을 읽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믿음을 일으키도록 맡기면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가족을 전도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빛을 비추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했을 때 우리 가족은 아무도 예수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요 심지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제 아내가 너무나 극진히 우리 가족들을 사랑하고 시댁 어른들을 지극히 존경 했을 때입니다. 결혼 초기 우리가 부엌도 없는 단칸 방에 살았습니다. 그 때 시골에서 10여명의 친척들이 친척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에 온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 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막상 서울에 올라와 보니 마땅히 찾아 갈사람이 없어 예고도 없이 우리 집에 온 것입니다. 내 아내는 아직 새댁이고 손님을 대접할 요리 실력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부엌도 없고 한 거번에 10여명이 먹을 그릇도 없는데 그 많은 손님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집에 부탁해서 그 집 부엌과 그릇을 빌려 정성껏 기쁜 마음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가족들을 대접 했습니다. 그 때 기독교에 대해서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4촌 형님이 큰 감동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그러면서 나를 목사로 인정하게 되고 많은 친척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착한 행실을 보여 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을 믿고 구원을 맏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도록 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 십니다. 우리는 말씀만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아직 믿지 않는 우리 가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자기 가족부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Charty begins at ho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먼저 자기 가족부터 도우리고 하였습니다.
딤전 5: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부고] 권영선(조병기) 집사님 모친이신 故 김옥수 님께서 오늘 소천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내 가족으로 여기 오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