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난 이름
본문 :빌 2:6-11 찬송가 320, 321
본문은 그리스도에 대한 찬송 시로 유명하다. 이 말씀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따라야 할 것을 예시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그리스도의 참 구원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옛날에 내가 이 본문으로 설교를 했는데 이 설교를 들은 어떤 분은 치유를 체험했다고 한다.
Ⅰ. 사람들과 같이 되신 예수님(6,7)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나, 그런 높은 위상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주권을 탈취하려고, 곧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었다. 그 결과는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 형상의 위치에서 굴러 떨어져 사단과 피조물, 그리고 죄와 죽음이 종이 되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첫 아담의 후손으로 그와 같이 스스로를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는 허영과 교만(hybris)에 빠져 하나님 같이 되려고 자기주장을 한다. 그리하여 첫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높은 위상에서 타락하여 비인간화 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 생기는 모든 문제들은 바로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는 자기주장 때문에 생긴다. 여기서 갈등이 생기고 대립이 생기고 분열과 다툼이 생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본체 이셨으나 그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여기서 형체(morphe)는 하나님의 본질을 담아 들어내는 틀을 말한다. 그러므로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것은 종이라는 형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본질을 담아 내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말할 때(골 1:15) 초월자 되신 하나님을 그안에 품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인지 기관(이성)으로 파악 해 버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스스로를 들어 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드러내신 분 곧 하나님의 계시자다.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신 분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셨다는 점에서 아담과 대조 될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죄인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신 점에서 우리에게 큰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다. 그가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웠다고 했는데 여기서 “비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많은 이단들은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실 때 하나님의 신성을 완전히 비워 버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줄 수도 없고, 구원의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우다”는 의미는 신성의 존재가 인간과 같이 되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으로 들어오심, 인간의 가난한 처지에 참여하심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스스로 자기를 비었다는 말을 부연 설명하는 내용이 다음 구절에 있다. 세 개의 단어로 설명한다.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He made himself noting) 종의 형체를 가져(taking the very nature of servant)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being made human likeness)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위대한 도리를 배울 수 있다.
첫째, 첫 아담은 자기를 높이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현재의 모습보다 훨씬 더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반면 둘째 아담 예수는 자기를 낮추 시셨지만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셨다는 것이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아담은 ᐱ로 묘사 된다면 예수님은 V로 묘사 될 수 있다
둘째,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은 구원사적인 의미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님이신 초월자께서 인간 세상에 내재 하신 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과 희생을 의미한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자체가 인간 편에서 보면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은혜요 공짜의 선물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엄청난 값비싼 희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많은 희생을 해 보아야한다. 나는 공자로 받았으니 이제 이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겠지만 더 깊은 복음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Ⅱ. 스스로를 복종 시키신 예수님(8)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는 자기를 복종 시키시되 어느 정도까지 복종 시키셨는가 하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 하셨다.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속죄의 죽으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철저한 복종과 순종이다. 아담의 죄의 근원은 불 순 종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철저한 복종, 순종을 배운다. 우리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을 하게 되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이 커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된다.
제자 훈련 받은 어떤 집사님이 간증하기를 언젠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데 자기의 의지와 달리 성령께서 강력하게 이런 기도를 시켰다고 했다. “당신께서 저를 마음대로 쓰십시오. 주님께서 쓰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런 기도는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기도를 하고도 약간 후회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부터 자기 신앙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 순종 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삶을 가져 온다. 그리스도는 순종하심으로 어떤 축복을 가져 왔는가?
Ⅲ. 뛰어난 이름을 받으신 예수님(9-11)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란 곧 만물의 창조주로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고 “야웨”이다.
“무릎을 꿇게 하시고” 무릎 꿇음은 예배 동작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우편에 높이시어 자신의 이름을 주신 것은 만물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 “야웨- 큐리오스-주”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라고 했다. 만물- 하늘에 사는 천사들이나, 땅위에 사는 인간들이나, 심지어 땅 아래 악령들까지도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하는 것이다.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면서 그들의 혀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다”라고 시인하게 하셨다,
시인하다는 말은 고백하고 또 부르짖음을 뜻하는 말이다. 예배 때 예수그리스도를 부르짖는 행위는 그의 도우심을 호소하는 동시에 순종을 서약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만유를 통치하는 주권을 위임 받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진정한 구원이요(롬 10:9참조 행 2:21). 사단의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그의 주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골 1:13).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스스로 낮추고 순종한 그리스도를 자신의 우편에 높이사 자신의 이름을 주시고 자신의 대권자로 만드신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이 사단의 주권에서 해방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의 영역으로 이전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온 우주의 피조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짖어 그의 구원의 은혜를 의지하고 그의 선한 통치에 순종할 때 온 우주는 사단의 사주 안에서 저질렀던 하나님에 대한 반란을 끝내고 평정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러한 우주 평정의 일군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스도가 온 우주를 평정하여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그를 예배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짖을 때, 그는 그 임무를 완성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그의 주권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다시 돌려 드려 온 우주가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아래 회복되게 될것이다(고전 15:22-28). 그러므로 온 우주의 피조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그 이름을 부르짖게 한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이란 단순히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악과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뿐 아니라 사단을 섬기는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에 온전히 굴복하는 것이 구원의 극치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적인 생명 곧 영생을 받은 우리가 그의 주권에 복종하며 사는 것이 구원의 진정한 축복이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이 세상 임금인 사단에 굴복하고 사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세상 임금인 마귀가 통치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도움으로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사는 승리의 삶이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의지를 꺾고 자기주장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부담으로 생각한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참 자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죄란 자기를 주장하는 의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더 큰 얽매임을 받게 되며 더 큰 자유를 제한 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삶은 사단의 지배를 부르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굴복 시키고 그리스도의 주권애ㅔ 순종하면 성령이 한량없이 부으셔서 우리의 삶에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게 해준다. 여기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난다.
제자 도는 바로 이와 같은 예수의 주권 앞에 자신을 굴복 시키는 과정이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훈련시키시는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부활 하신 후 베드로를 찾아 오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사도요한은 이 말씀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그렇게 능력있게 사역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그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개 담대하게 웨쳤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래서 바울도 여러 서신에서 그가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받은 삶을 살았는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바울의 고난의 목록들이라고 부른다. 고전 4:9-13, 고후 4:7-10, 6:9f, 11:23-33에 바울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11:23-33
23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그와 같이 자기주장을 버리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에 로마서를 쓰면서 이렇개 기록했다.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이 말씀은 내가 섬겼던 선교 단체의 요절이요 부흥의 원동력이었다,
기독교가 힘을 발휘 할 때는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온전히 순종 할 때이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는 곳에는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새롭게 알게된 한 분이 있다. 그분은 27살의 꽃다운 나이에 류마치스 관절염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는 딸을 빼앗기고 친정집으로 쫒겨 나게 되었다. 물론 남편에게도 버림 받게 되었다. 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기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사력을 다하여 병과 싸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빚을 내가면서 유명한 병원을 다니면서 병을 낫기 위해서 온힘을 쏟았다. 그의 병과의 싸움은 그야말로 초인적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병은 더 심해져서, 이제 완전히 몸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12해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처럼 아주 소망이 없었을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병과 싸운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병이 낳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투병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자리에 누워서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자기의 오그라든 팔과 다리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자기는 이미 낳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기 병을 낫게 해 주신 예수님을 증거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말씀 기도 찬양으로 미친 듯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산다. 누워서 성경을 몇 개월 만에 23회독을 하고 꼬부라진 손으로 비뚤 비뚫한 글씨로 성경 필사를 한다. 만 7년을 그렇게 병마와 싸우는 가운데 불가능한 오그라진 팔과 다리가 완전히 펴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은 병마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십자가를 통해서 그가 류마치스라는 불치의 병에서 낳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아직 병이 낫지 않았지만 그녀는 한번도 그녀의 병이 온전히 낫게 되었다는 것을 의심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번에 그분이 그의 간증을 책으로 썼다고 나에게 전화가 왔다. 즉시 책을 사서 읽었다. 너무나 감동해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단순한 간증 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삶이 생생하게 그려저 있다,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불러 내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보여준 책이다.
이 책은 많은 병자들, 특히 불치의 병을 앓고 사는 자에게 큰 소망을 주는 책이다. 아니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복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읽어 볼 수 있도록 내 자비로 책을 사서 몇권을 가져 왔다. 읽고 싶은 분을 가져다 읽고 감동이 되면 책값을 보내 줘도 되고 안보내 줘도 상관 없다.
그는 그 책에서 아주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이렇개 말한다. 자기가 그렇게 병과 싸우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것은 이미 그의 병이 낳았다는 복음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산다는 것이다, 노력하면 병이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노력으로 병마와 싸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 한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순종하기 위하여 바울과 베드로와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을 섬기는 것은 이미 우리가 구원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안에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미 이겨 놓고 하는 싸움이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불가능에도 도전하여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25만명의 외국인 선교에 온힘을 다 쏟아 날마다 도전하며 살고 있다, 이 일은 내가 이룰 일이 아니요 주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와 같은 확신으로 순종하는 삶은 더디지만 반드시 그 열매가 나타나고 있다.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멘 아멘.
내 가족으로 여기 오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난 이름
유학생 페스티벌 메시지